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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복서, 허리케인 카터의 절규

- 그 누구도 나를 가둘 수는 없어!

cnbnews김대갑⁄ 2007.04.13 23:35:30

감동적인 영화는 희망이라는 단어와 항상 결부되어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 그나마 남아 있어 인간에게 최후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영화라는 대중매체에서 감동의 도구로 흔히 등장한다. 영화 '허리케인 카터'는 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덴젤 워싱턴'이라는 탁월한 배우의 몸을 빌려 유감없이 보여 준 훌륭한 영화이다. 덴젤 워싱턴이 누구인가? 지난 2002년 <트레이닝 데이>라는 영화로 흑인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미국의 대표적인 성격파 배우이다. 아주 준수한 외모에, 매우 지적인 눈빛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쳐온 덴젤은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고 관철해나가는 강직한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필라델피아>에서 에이즈에 걸린 톰 행크스를 최후로 변론했던 이도 그였으며, 핵잠수함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서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최후까지 핵전쟁을 막고자 애썼던 엘리트 부함장도 그의 몫이었다.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연기한 <본 콜렉터>에서는 지능적인 살인자와 냉철한 두뇌게임을 벌이는 '링컨 라임'으로 열연을 펼친 이도 '덴젤'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더 이상의 찬사가 필요 없는, 최고의 배우인 것이다.

덴젤 워싱턴에게 두 번째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이 영화는 철저히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이다. 11세의 어린 나이에 자신이 '미국인'이 아니라 '흑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허리케인 카터. 백인들의 지독한 인종차별에 맞서 단지 생존하기 위해 복싱을 선택했던 허리케인 카터의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는 '절망과 희망'은 언제나 함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준다. 자신의 흑인 친구를 성추행하려는 백인을 칼로 찌른 죄로 소년원에 감금된 소년 '루빈 카터'는 소년원을 탈출한 후 공수부대에 입대하였고, 새로운 인생으로 복싱을 선택한다. 프로가 된 루빈 카터는 연전연승을 달려 '허리케인'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다. 그러나 1966년 페터슨에 있는 한 술집에서 백인들이 흑인 괴한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 델라 페스카 형사는 카터 일행을 아주 간단하게 살인자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사건 당일의 모든 증거를 조작한 델라 페스카의 서류를 확신한, 백인들로 이루어진 검찰과 재판부는 루빈과 그의 일행 아티스에게 종신형을 선고하고 만다. 카터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것도 백인을 합법적으로 때리는 건방진 흑인이라는 이유로 살인범이 된 것이다.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카터'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처절한 실존의 문제에 부딪친다. 왜 자기가 교도소에 있어야 하는지, 신은 어이하여 이런 시련을 주는 건지,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지, 과연 그런 것들이 있기나 한 것인지 고민하며 '카터'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 절망의 나날 속에서도 언젠가는 자신의 무죄가 증명될 것이란 '희망'이 그의 가슴속에 조금씩 싹트게 된다. '희망'은 그에게 엄청난 양의 독서와 집필을 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그는 바깥세상을 향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책을 던지게 된다. 책제목은 <제16라운드>였다.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캐나다의 백인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사는 흑인 소년 레스라는 우연히 이 책을 헌책방에서 단 돈 25센트에 구입하게 되고 그날부터 진지하게 탐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책 속에서 22년간 갇혀 있는 허리케인의 절규에 깊은 감명을 받은 레스라와 환경운동가들은 그의 무죄를 확신하고 적극적인 구명운동에 나서게 된다. 이제 '허리케인 카터'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희망이 생긴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백인을 신뢰하지 않는 카터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카터의 감옥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까지 세를 얻는 정성을 기울이고, 마음을 연 카터는 그들과 함께 연방법원에 재심을 신청한다. 다시 엄청난 양의 서류에 대한 재조사가 들어가고, 지루한 법정 공방이 벌어지기를 수차례 마침내 카터의 '희망'은 그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1985년 7월, 뉴저지 주 연방법원의 시로킨 판사는 루빈 허리케인 카터의 즉각적인 석방을 명령하게 된다. 허리케인 카터는 이제 '희망'을 넘어 '자유'를, 꿈에도 그리던 그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의 책을 진실이라고 믿는 흑인 소년, 휴머니즘의 순수함을 간직한 백인 청년들과의 만남, 대가없이 변론을 맡아주는 변호사, 그리고 냉철한 판단으로 무죄를 선고하는 판사. 마침내 허리케인 카터는 무려 22년의 억압을 뚫고, 자유와 진실의 바다로 당당히 나오게 되었다.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신부의 헌신적인 보살핌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영화가 끝난 후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라.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맑은 새의 울음소리는 정겹게 들릴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폐부를 찔러대는 감동을 잔잔하게 느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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