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영⁄ 2025.11.11 16:11:22
동아대학교 대학원 재난관리학과와 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 미국 네브래스카대 행정학과, 한국리서치, 씨지인사이드는 이태원 압사 사고 3주기를 맞아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난안전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이태원 참사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 수준, 정부 대응 신뢰, 회복 탄력성, 정치와 언론 신뢰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실시됐다.
‘대한민국은 점점 더 안전해지고 있다’는 문항에 32.1%만이 동의, 국민 3명 중 1명만이 ‘안전 향상’을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은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는 문항에는 59.6%가 동의했으나 △예방 중심의 재난관리 체계에 대한 긍정 응답은 36.8% △정부·지자체 대응체계에 대한 신뢰는 41.2% △경제·정치보다 안전이 우선되는 사회 항목은 35.9%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예방(50.6%)·대비(48.8%) 단계의 부정 응답률이 대응(42.0%)·복구(39.8%)보다 높아, ‘재난사고 이전 단계의 관리 실패’가 국민 인식에 깊게 각인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결과는 국민이 ‘예방과 신뢰 회복의 부족’을 더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대별로는 ‘청년층은 신뢰는 낮지만 학습 및 정보역량이 높고, 장년층은 제도의 필요성과 운영 효율은 인정하지만 안전의 가치화에는 냉담함. 고령층은 디지털 소통의 단절과 지역 안전망 미비로 체감 안전 수준이 낮게 나타남’의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념별로는 진보층이 ‘정부의 구조적 실패’를, 보수층은 ‘시민의 대응 한계’를 강조하며 정치적 분극화가 신뢰 인식의 주요 결정요인으로 작용했다.
계층별로는 고소득층일수록 예방·회복·대응에 대한 신뢰가 높았고, 저소득층은 제도 소외감과 접근성 한계를 경험해 ‘사회적 안전 불평등(Safety Inequality)’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소득 불평등에 따른 안전 체감 격차도 뚜렷했다. 월평균 가구소득 600만 원 이상 응답자의 68.6%가 “한국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응답한 반면, 300만 원 미만 응답자는 52.1%에 그쳐 16.5%p의 격차가 발생했다. ‘재난 이후 회복 능력(회복탄력성)’ 항목에서도 고소득층은 62.1%, 저소득층은 40.5%로 21.6%p의 격차를 보였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을 곧 ‘재난 이후 회복 능력의 불평등’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신호로 해석된다.
이태원 압사 사고의 원인에 대한 인식은 이념 성향에 따라 크게 달랐다. ‘우리 사회가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는 문항에 진보층 75.6%, 보수층 56.2%가 동의했다. 반대로 ‘시민의 부주의와 안전 불감증이 주요 원인’이라는 항목에는 보수층 71.7%, 진보층 60.8%가 동의했다. 진보층의 82.6%는 ‘경찰의 인파 통제 실패’를, 보수층의 77.6%는 ‘시민의 자율 안전의식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세대 간 재난 정보 접근 격차도 뚜렷했다. ‘재난 관련 정보를 주로 SNS에서 얻는다’는 문항에 18~29세 59.2%, 70세 이상 36.2%가 동의, 젊은 세대일수록 디지털 기반 재난 커뮤니케이션 의존도가 높았다. 이는 고령층을 위한 비(非)디지털 채널의 정보 접근성 강화와 맞춤형 재난 소통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장소진 교수는 “국민이 재난 대응의 속도보다 예방의 신뢰, 제도의 공정성, 정치적 중립성의 회복을 더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 김정훈 ㈜씨지인사이드 규제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이번 조사 결과는 계층·세대·이념 간 인식 격차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사회적 통합은 단순한 애국심 강화가 아니라 신뢰 기반의 공정성 회복과 세대 간 가치 공유를 통해 달성돼야 함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매년 설문지를 개발하고 공동조사를 총괄 기획한 이동규 교수는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난 핵심은 우리 국민들이 재난관리의 행정 효율성 같은 기술적 개선보다 제도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 책임이나 사회적 연대의 회복을 더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라며 “따라서 이제 재난은 단순히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신뢰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3.1%p(95% 신뢰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