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희⁄ 2025.12.23 14:51:21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가 23일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 기획전 ‘오래된 극장 2025: 필름에 쓴 이야기’를 연다. 세계 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22편을 통해, 산업화와 전쟁의 시대를 관통한 인간의 고독과 불안, 계급과 갈등, 사랑과 윤리라는 보편적 질문을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이번 기획전은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어니스트 헤밍웨이, 레오 톨스토이, 에드가 앨런 포 등 문학사의 거장들이 남긴 이야기를 각기 다른 시대와 미학을 지닌 감독들의 해석으로 만나는 자리다. 한 해의 끝자락, 이야기의 힘을 통해 삶과 시간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올해는 영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집중 상영된다. 로버트 Z. 레너드 감독이 오스틴의 날카로운 풍자를 할리우드식 로맨스로 풀어낸 ‘오만과 편견’(1940), 이안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1995),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엠마’(1996), 현대적 해석이 돋보이는 ‘맨스필드 파크’(1999) 등 네 편이다. 영국 중상류층 사회의 일상과 여성의 삶, 결혼과 계급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한 오스틴 문학의 힘을 영화로 확인할 수 있다.
산업혁명기 영국 사회의 그늘을 그린 찰스 디킨스의 작품도 만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위대한 유산’(1946)과 ‘올리버 트위스트’(1948)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과 사회적 부조리를 고전적 영상미로 담아낸 대표작이다. 러시아 문학의 거봉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는 조셉 폰 스턴버그의 ‘죄와 벌’(1935), 구로사와 아키라가 전후 일본으로 옮겨 재해석한 ‘백치’(1951),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958),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악령’(1988) 등을 통해 다층적으로 펼쳐진다.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도 대거 포함됐다. ‘무기여 잘 있거라’(193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 하워드 혹스 감독의 ‘소유와 무소유’(1944), 누아르의 고전 ‘살인자들’(1946), ‘노인과 바다’(1958)는 전쟁과 사랑,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응축된 이미지로 전한다. 이 밖에도 톨스토이의 대서사시를 옮긴 ‘전쟁과 평화’(1956), 에드가 앨런 포의 괴기 문학을 영상화한 ‘어셔 가의 몰락’(1928),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1962),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1940)와 ‘에덴의 동쪽’(1955), 브론테 자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인 에어’(1943)와 ‘폭풍의 언덕’(1939)까지 문학과 영화의 고전이 한자리에 모인다.
상영은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진행된다. 1월 17일 ‘오만과 편견’ 상영 후에는 옥미나 영화평론가의 특별 강연이 마련되며, 김은정·김필남·박소영 부경대 강사와 함윤정 영화평론가의 해설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