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영⁄ 2026.04.13 10:05:18
부산대학교 연구진이 위 점막 깊숙이 숨어 항생제로도 박멸이 어려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스마트 나노입자 시스템을 개발했다. 위 점액층은 통과하고 헬리코박터균에만 강력 접착하는 신개념 기술로, 기존 항생제 용량의 10분의 1만으로도 99.9% 균을 제거하는 효과가 확인돼 위 내 질병 치료 난제 해결에 한 걸음 다가섰다.
부산대는 제약학과 유진욱 교수 연구팀이 홍합의 접착 원리에서 착안한 폴리도파민(polydopamine) 계면공학 기술을 적용해, 위 점막을 자유롭게 통과한 뒤 병원균에만 강력하게 착 달라붙어 약물을 전달하는 스마트 나노입자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 감염은 위궤양을 유발하는 대표적 원인이며, 만성 염증을 거쳐 위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 주요 위험 요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임상 치료는 전신 항생제 복용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몇 가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위장 내부는 강산성 환경과 점액층이라는 강력한 생물학적 장벽이 존재하고, 약물은 체내 이동 과정에서 간 대사(간에서 약물이 분해·변환되는 과정)와 희석을 겪는다. 그 결과 병변 깊숙한 조직까지 약물이 충분히 도달하기 어려운 전달의 모순(delivery paradox)이 발생하고, 치료 실패를 막기 위해 고용량 항생제를 쓰게 되면서 항생제 내성 문제를 키우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시스템의 핵심은 ‘어디서나 잘 붙는’ 단순 접착이 아니라, 위장 내 환경에 따라 기능이 단계적으로 바뀌는 ‘다중 단계 전달’ 전략에 있다.
연구팀이 설계한 나노입자는 ▲강산성 위 환경에서는 안정성을 유지하며 약물 누출을 억제하고 ▲점액층에서는 mucin(뮤신, 점액 성분)과의 불필요한 상호작용을 최소화해 깊이 침투한 뒤 ▲감염 부위에서는 별도의 리간드(표적 분자) 없이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강력하게 부착돼 항생제를 집중적으로 전달하도록 구성됐다. 탑재된 항생제 약물로는 클라리트로마이신(clarithromycin)이 활용됐다.
연구팀은 이번 전략을 통해 기존의 ‘표면 타깃팅’ 수준이 아니라, 병변 선택적 축적 → 점액 통과 → 조직 깊이 침투 → 세균 부착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in vivo(생체 내)에서 통합적으로 검증했다.
실제 질환 모델에서 나노입자는 궤양 조직 내부 최대 400 μm (mm의 1/1000) 깊이까지 침투했으며, 균을 약 99.9% 제거하는 성과를 보였다. 특히 기존 대비 약 10배 낮은 항생제 용량으로도 치료 효과를 달성해, 항생제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치료 효율을 극대화하는 정밀 국소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유진욱 부산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위장 내 생물학적 장벽 극복과 표적 병원균 부착을 동시에 구현해 위장 내 전달의 모순(delivery paradox)를 해결하는 전략을 제시한 것”이라며 “항생제 내성을 줄이며 치료 효율을 높여 환자들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한 이 기술이 다양한 감염성 염증 질환에서 점액층 등 생물학적 장벽을 극복하는 나노치료 기술로 응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감염성 질환 치료의 방향을 ‘많이 투여하는 치료’에서 ‘정확히 전달하는 치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컨트롤드 릴리스(Journal of Controlled Release)』 3월 31일자 게재됐다. 한국연구재단(NRF) 중견연구자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부산대 제약학과 유진우 교수가 교신저자, 김현우 박사과정생이 제1저자로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