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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국립대, '궁으로 간 최순이' 발간

양지선 학술연구교수 저자…조선시대 전문 예술인 '기생' 대한 편견 없애기 위해 집필해

cnbnews심지윤⁄ 2023.06.14 18:05:26

양지선 학술연구교수와 저서 '궁으로 간 최순이' 표지. (사진=경상국립대 제공)

경상국립대학교 출판부는 조선시대에 태어나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현대를 거치며 관기의 삶을 살아온 한 여성에 대한 대서사인 '궁으로 간 최순이'를 발간했다. 저자는 양지선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이다.

경상국립대 출판부는 "이 책은 훗날 궁중의 검무를 국가무형문화재 '진주검무'로 전승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최순이에게 보내는 '헌사'로서, 조선시대 전문 예술인이던 기생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집필됐다"고 설명했다. 자주적이며 예술에 헌신적이기까지 했던 조선의 '관기'. 남성을 위해 살았던 '도구'로서가 아닌, 높은 수준의 가무를 익혔던 전문가로서의 그녀의 인생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책의 전반부는 최순이의 궁중 생활기다. 그녀가 진주에서 상경해 궁중의 관기가 되고, 일제강점기, 더 이상 연회가 열리지 않자 낙향해 진주 권번의 스승이 되기까지의 그녀의 인생을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 말과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궁중 연향(연회) 모습도 묘사한다.

일제강점기, 연회 담당 인원을 줄이면서 궁중 악사가 무동의 역할까지 하는 과정, 프랑스 왕실 못지않은 조선 왕실 연향의 격식과 예에 맞춘 초호화 궁중음식 코스, 화려한 꽃장식, 그리고 연회에 참가한 모든 여령이 왕과 같은 종류의 음식을 대접받은 사실까지, 그 사료를 찾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은 '의궤'와 진찬도병(그림) 등의 기록을 고증해 궁중의 무희들이 어떤 종류의 춤을 추었고 몇 명이 췄는지 어떤 복식을 했는지 흥미롭게 서술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마치 궁중의 연향에 참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후반부는 조선의 왕실에서 더 이상 연향을 하지 않자, 설 자리가 없어진 관기들이 궁에서 나와 요릿집에 취업하거나 '기생조합'을 만들어 직접 운영하며 경제 활동을 한 이야기다. 조선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하는 기생들의 일생을 좇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폐허가 된 1950년의 진주성까지 마주하게 된다.

최순이를 비롯한 진주 기생들은 '모의당'이라는 공간에서 의기창렬회를 조직해 다시금 논개의 제를 지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6·25전쟁 가운데서 개최된 예술제인 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의 전신)에서 국립국악단원과 함께 무용을 선보인다. 궁중의 춤이 대중 곁으로 나아간 것이다.

시·서·화 등의 인문교육을 받은 궁중의 관기 출신 기생들은 자주적이며 능동적이었다. 그들은 노동 환경을 개선해 줄 것과 매출을 공개해 줄 것을 사용자 측에 요구하면서 파업하기도 했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하는 노동자였으며,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했던 신여성이었다.

한편, 최순이는 평양이나 서울의 요릿집 대신 낙향해 진주의 기생조합에서 궁중에서 배운 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로 마음먹는다. 최순이가 스승의 길을 걸으면서, 최순이 인생 2막이 시작됐다. 훗날 이 결정은 진주검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교방문화라는 꽃을 피워내는 데 씨앗이 된다.

국가무형문화재인 진주검무 이수자인 저자는 최순이에 관한 자료와 궁중 교방문화에 대한 방대한 학식으로 최순이의 인생을 복원해 내는 데 성공했다. 최순이가 직접 가르친 권번 제자들과 김천흥이라는 궁중 악사가 최순이가 진주검무를 전승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말해준다.

올해 2023년은 진주에서 형평운동이 시작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백정은 형평운동을 통해 그 신분이 해방됐다. 그러나 천민 신분인 백정과 기생, 그들은 여전히 신분에 따른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유독 기생은 아직 단순히 성(性)을 팔고 술을 따르는 이미지로만 소비된다.

이 책은 예인으로서 기생의 면모를 부각하고자 했다. 전문 예술인이던 관기가 아니었다면 궁중의 춤과 노래는 다음 세대에 전승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권번 문화가 들어오면서 일제는 기생을 풍기문란한 존재로 편견을 조장한다. 1941년 일본이 전시 체제로 돌입하면서 '기생'이라는 이름이 전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접대부'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생=접대부'라는 등식이 생겼다. 1910년 이전의 관기, 선상기, 여령과 같이 전문예술인에 해당하는 한국 기생의 참 의미는 사라졌다. 기생이라는 단어의 오염은 일제에 의해 주도됐다.

오늘날 관기를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조선의 연향 문화를 습득한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조선의 체계적인 학습 시스템을 통해 궁중 연향에서 행해지는 모든 퍼포먼스를 익혔으며, 가·무·악과 시·서·화, 심지어 예절 교육까지 받았다. 이는 관기 개개인에게는 혹독하고도 힘든 과정이었으나, 아름답고도 찬란한 문화유산이다. 최순이가 평생 제자를 가르친 이유도 이 궁중의 춤이 후대에 널리 전승되기를 간절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1969년 최순이는 숨을 거둔다. 그녀의 곁에는 몇몇 기생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갑 안 서랍장 안에는 몇 장의 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조차 그 유품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자신들이 그동안 해온 일이 결코 자랑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때문이다. 그렇게 최순이는 쓸쓸하게 마지막을 맞이했다. 진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진주검무'라는 꽃을 피우고 흙으로 돌아갔다.

'궁으로 간 최순이'는 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가 기획한 '지앤유 로컬북스'의 열 번째 책이다. 경상국립대출판부는 지앤유 로컬북스 '궁으로 간 최순이'의 출간을 기념해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책과 이야기, 음악이 있는 북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번 북 콘서트는 책에 등장하는 기생(관기)의 사진과 조선시대 연향을 담은 옛 그림을 소개하는 저자 강연이 준비돼 있으며, 가야금병창 공연도 예정돼 있다. 콘서트는 오는 22일 오후 6시 30분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 박물관 1층 지앤유 북카페에서 열린다. 무료로 참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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