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영⁄ 2025.02.20 10:10:33
부산대학교는 식민지 시기 경제사와 운동사·사회사를 연구해 온 역량 있는 학자인 오미일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 교수가 '한국협동조합운동의 역사와 시대정신'을 발간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에 발간한 저서 '한국협동조합운동의 역사와 시대정신'은 사회의 일부인 경제가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사회의 규범과 윤리가 된 자본주의체제의 생산방식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출발한 연구다.
자본주의 체제는 기후변화, 생물 멸종, 자원 고갈 등의 외적 한계와 단선적·누적적 생산방식으로 인한 내적 한계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인간의 심리적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바탕으로, GDP 중심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탈성장의 번영’을 모색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시작됐다.
저자는 자본주의체제가 야기하는 경제적·사회적 위기에 대응한 자구적 대안 중 하나인 협동조합의 역사를 정리했다.
총 511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들어가며: 협동조합운동의 시대와 정신 △1부: 협동조합론의 도입과 운동의 전개 △2부: 신국가 건설과 협동조합운동 △3부: 경제 재건과 신용협동조합운동 △4부: 인플레와 소비협동조합운동 △5부: 협동금융과 지역경제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일제 독점자본에 대항해 조선물산 장려의 일환으로 혹은 경제적 자립을 위해 전개된 일제시기의 협동조합운동에 대해 서술했다. 협동조합론의 도입과 수용에 대해 먼저 분석한 후, 이 시기에 설립된 수많은 협동조합을 협동조합운동사계열, 기독교계열, 천도교계열, 노동농민단체계열 등 주체별로 분류·정리했다.
이어 2부에서는 해방 후 일제시기의 금융조합 재편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정치적 중립 원칙’ 폐기 등 신국가 건설 과정의 협동조합론의 특징을 살펴본다. 각 진영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경쟁적으로 조직하는 양상, 설립 경로와 유형도 들여다본다.
3부에서는 한국전쟁 후 폐허 상황에서 경제 재건을 위한 목적으로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4부에서는 1960~7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극심해진 인플레에 대응하기 위해 가계경제의 자구책으로 전개된 소비조합운동을 다뤘다.
5부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무너진 경제주체의 경제적 자활을 위한 경제운동의 전개 양상을 살핀다. 경제의 세계화로 인한 국가 간·지역 간 격차의 심화, 그리고 사회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에 대해 살펴본 후 그 대안으로 ‘경제의 지역화’를 실천하는 로컬경제운동을 소개한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에 관한 학술서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시장만능주의와 소비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적 연대를 통해 경제적 활로를 모색하는 활동가 또는 생태경제학이나 대안경제에 관심을 가진 일반시민들에게도 앞 시대의 실천과 성쇠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부산지역은 1960년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와 강정렬 등이 중심이 돼 성가신용조합을 설립해 전국적으로 신용조합운동을 확산시켰고, 1968년 장기려가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처음 조직해 부산의료협동조합과 통합, 청십자의료협동조합으로 개편함으로써 후일 국가의료보험제도의 연원이 됐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운동의 기지였다.
오미일 교수는 “더구나 부산은 1978년에는 중부교회를 중심으로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이 설립돼 전국적으로 양서판매협동조합을 확산시켰고, 협동조합이 부마민주항쟁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하는 등 협동조합운동의 중심지였다. 로컬경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 협동조합운동에 관한 학술서의 출간은 대안경제, 사회적 경제를 추구하는 지역경제와 지역운동 차원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오미일 교수는 앞서 2002년 '한국근대자본가연구'로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2003년 전국경제인엽합회가 주관하는 제14회 자유경제출판문화상 수상, 2015년 '근대 한국의 자본가들'로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 2018년 '제국의 관문-개항장도시의 식민지 근대'로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세종도서(학술부문) 선정 등 왕성한 저작 활동으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왔다.